
► 포스트 코로나와 금융이해력
자본주의와 급격한 디지털 전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문해력(Literacy)뿐만 아니라 금융이해력(Financial Literacy)과 디지털이해력(Digital Literacy)이 함께 필요하다. 단순히 글을 읽고 쓸 수 있다고 해서 문해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금융이해력은 단순히 금융용어,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 금융투자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일구어 가는 데 필요한 재무계획을 세우고, 금융 관련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서 이해하고, 그것이 유용한지를 평가하여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는 금융웰빙(Financial Well-being)이 필요하다. 금융웰빙은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경제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마다 처한 여건, 삶의 방식, 돈에 대한 가치관이 다를 수 있으므로 자기가 추구하는 잘 사는 웰빙을 일구어 가는데 필요한 금융니즈를 잘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금융이해력은 바로 금융웰빙을 세우는 기초 공사로 이해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금융위기를 겪을 때마다 악화되어 온 경제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시대가 오더라도 이 문제가 쉽게 완화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금융이해력의 필요성을 개인의 금융웰빙 차원을 넘어서 더불어 사는 우리 사회의 안정성에 얼마나 필요하고 기여할 수 있느냐는 공동체의 문제로 확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금융 통화 당국의 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 FRB 전 의장의 한 마디는 금융이해력의 필요성을 압축적으로 환기시켜 준다. “비문해가 한 사람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한다면 금융비문해는 한 사람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사회는 개인들이 모인 집단이다. 생존이 어려운 불행한 개인이 많아진다면 결국 그 사회 구성원 모두의 행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금융이해력 증진의 과제는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몫이다.
► 디지털 전환시대와 금융이해력
코로나 팬데믹으로 강요된 비대면 환경은 금융 디지털화의 진행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금융은 전반적으로 금융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반면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를 통한 금융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필요한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되거나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생활에 필요한 디지털 이해력은 이제 금융이해력의 한 부분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디지털금융의 발전과 확산은 새로운 문제를 낳기도 한다. 금융산업의 핵심인 은행은 자체 보유하고 있는 전산시스템의 강력한 보안체계로 안전과 신뢰의 대명사로 인식됐으나 인터넷과 핀테크의 진입 등으로 디지털금융의 정보와 거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또한 강력한 고객 접점을 가진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도 금융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이들이 금융규제를 우회하면서 금융소비자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과 비용을 전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기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의 네이버 파이낸셜, 카카오 페이 등 플랫폼 기업의 펀드와 보험상품 비교 판매 금지 조치는 이런 우려를 반영한 규제 조치다. 더 많은 사람이 디지털금융의 편익을 얻을 수 있도록 개인의 디지털 이해력 증대와 함께 금융정보와 거래의 안전성, 금융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공정성 확보를 위한 감독 당국과 금융회사들의 책임과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
► 금융교육의 발전 방향
금융이해력은 금융교육을 통해서 증진될 수 있다. 현재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은 다양한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교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여 금융이해력의 증진 및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와 디지털 전환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금융웰빙에 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금융교육의 발전 방향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학교 금융교육은 구체적 금융 지식보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삶의 모습과 방식,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 필요한 돈에 대한 생각을 키우고 세워나가는 교육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금융을 포함한 경제적 의사결정이 반드시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개별적 경험, 가치관, 심리적 요인 등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금융웰빙은 자기가 스스로 정립한 자신만의 가치관과 ‘돈에 대한 생각의 토대 위에서만 세워질 수 있다. 또한 학교 금융교육은 학부모에 대한 ‘금융이해력의 필요성’ 교육이 병행되어야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상당수 주 교육 당국이 고교 금융교육 학점 이수를 졸업 요건으로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교과목 편입이 쉽지 않은 실정이어서 학부모의 광범위한 공감대 형성이 우선 필요할 것 같다.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학부모들이 충분한 금융이해력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이상으로 자녀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금융교육의 확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금융교육 프로그램은 가능한 개별 대상 맞춤형으로 개발되고 제공되어야 한다. 금융이해력의 토대가 되는 기본적인 표준 콘텐츠의 다양성 보강과 함께 개별 성격을 반영한 맞춤형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그룹, 언어문화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그룹, 디지털 소외 우려 그룹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하여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개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현장 접점에서 개별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및 관련 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금융교육을 학교ㆍ 청소년 교육 중심에서 전 연령에 걸친 ‘평생교육의 영역’으로 확장, 제공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금융 니즈는 생애주기에 따라 변화하고 디지털시대의 금융상품과 서비스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 맞는 지속적인 금융교육을 통한 금융이해력의 증진은 우리 사회의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준 높은 교육 프로그램 개발 능력과 광범위한 공급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금융회사들과 효율적인 협업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매우 바람직한 K금융교육모델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