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해교육은 자신감이다.”
– 글 모른다는 것을 직장에 말할 수 없어 관리직으로의 진급 포기
– 구청 직영인 ‘영등포늘푸름학교’, 전 교육과정 무료로
– 보다 많은 남성 학습자들의 도전이 이어지기를
혹자는 “문해교육은 단순히 글자를 아는 것에서 나아가 나를 알고, 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이라고 그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특별히, 매년 “대한민국 문해의 달”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은 성인학습자에게는 자신의 속마음을 시적 언어를 통해 세상에 드러내고 타인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로서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평생학습 공동웹진에서는 올해 시화전에서 수상하신 분들 가운데 김종원 학습자(영등포늘푸름학교)와 그를 옆에서 꾸준히 교육하고 지원하신 이향순 선생님, 늘푸름학교의 이미애 교무부장을 만나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2021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영등포 늘푸름학교는 어떤 곳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향순 선생님(늘푸름학교 초등 3단계 담당 교사. 이하 ‘이) : 늘푸름학교는 영등포구청에서 직접 운영하는 학교입니다. 초등 3단계, 중등 3단계로 총 6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학습자가 조금 준 상태이지만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께서 찾고 계십니다. 교과 과정으로는 학력 인정이 되는 6단계, 학력 인정이 아닌 미학력 인정단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미학력 인정과정 같은 경우 학교를 졸업하신 경우나 상급 학교를 준비하시는 분들을 위한 단계들입니다. 또한 중학교를 졸업하시고 계속 학습하시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한 과정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전체 과정은 무료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 김종원 학습자께서는 시화전 출품작으로 “하늘나라 집사람에게”를 제출하셔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작품 내용에 관해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김) 저는 평생 글을 몰랐습니다. 그래도 살 수 있었던 것은 제 옆에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죠. 글을 모르는 저를 대신해 아내가 제 눈이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사별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제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면 집사람을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서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병원에 가면 글을 읽고 또 서류에 글을 써야 하지요. 글씨를 몰라서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늦어졌습니다. 시화전에 낸 작품은 평생 나를 위해 살아준 집사람이 떠난 후 힘들었던 마음과, 늦었지만 글을 배우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들려주고 싶어 만든 겁니다.
▶︎ 시 글귀 속에서 글을 몰라서 생활 속에서 겪었던 어려웠던 경험 또는 말 못 하는 아픔이 있으셨던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김) 저는 자동차 관련 회사를 다녔습니다. 재직 중 공장장 등 관리자를 하라는 제안이 여러 차례 있었지요. 관리자가 되려면 서류를 읽고 견적 뽑는 일을 하는 등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면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숨기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내가 글을 몰라서 못한다고 말도 못했습니다. 그저 기술직이 좋아서라고 말하며 평생을 기술직으로 살았습니다. 만약 회사를 다니면서라도 글을 배웠다면 공장장 등 관리직으로 직장생활을 더 오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시 속에서 “용기내어 나온 학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영등포늘푸름학교에 입학하셔서 글쓰기, 글 읽기 공부를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아울러,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집사람과 사별하고 주민센터나 세무서 같은 곳을 다닐 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서류 작업을 집사람이 모두 해주고 있었다는 것을요. 아들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막상 집사람이 없으니 막막한 것이 많았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작정 영등포구청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느냐고요. 그렇게 늘푸름학교를 찾아 왔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고 위축됐지만, 동급생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 남의 것을 쳐다보기만 했는데, 만약 이때 시선이 싸늘하거나 했다면 상처를 입어 계속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몰라서 쳐다보고 있으면 먼저 배운 분들이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알려주셔서 학교를 다니는 게 아주 즐거웠습니다.

▶︎ 이향순 교사님께 묻겠습니다. 김종원 학습자께서는 시에서 표현하셨고, 방금 답변에서도 상처를 입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언급 하셨습니다. 늘푸름학교 입학 후 초기에 문해학습에 집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교수자로서 가르치는 데에만 무게중심을 두진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지원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김종원 학습자님께서 워낙 성실하십니다. 그래도 동급생 중 남자 분이 혼자시라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실까봐 신경이 쓰이긴 했습니다. 특히 학습자분께서 아내와 사별하고 나오신 상태라 관련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많이 힘들어 보이셨습니다. 다행히 동급생 및 교사들과의 교류가 이어지며 현재의 결과가 나온 거 같습니다. 제가 한 노력이라면… 마음의 상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 “하늘나라 집사람에게”. 이 작품의 과연 어떤 점이 심사위원들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김) 사실 제 작품이 특별히 잘나거나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문해학교를 나오는 사람 중 대다수가 여성들입니다. 저도 선뜻 나오기가 어려워서 그 분들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상을 받은 것은 아마도 저처럼 학교를 나가는데 용기를 내는 남자들이 적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글을 모르는 많은 남자 분들이 저처럼 학교로 나와 글을 배웠으면 하는 심사위원님들의 마음이 있어서 상을 받은 거 같습니다. 글을 배우면 어디 가서든 떳떳해서 좋습니다. 그러니 저와 같은 많은 남자들이 학교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영등포늘푸름학교에서 문해 학습을 하면서 생활하시는 데서 달라진 면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관해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김) 가장 크게 달라진 거라면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마음대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글을 모르니 아는 길만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었던 자전거 여행이나 자동차 여행을 한 번도 못했습니다. 간판에나 네비게이션 글을 읽을 수가 없으니까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더라도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 어디에 써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물품 구매도 집사람이나 자식들의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사고 싶은 물건도 마음대로 살 수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시킬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메뉴를 읽지 못해서 식당에서도 마음대로 시킬 수가 없었고 과자 하나도 마음 편하게 사 먹어보지 못했었습니다.
▶︎ 가족 관계에서도 달라진 점이 있을 거 같습니다.
(김) 글을 모를 때는 자식들이 뭘 써 달라고 하거나 읽어 달라고 하면 피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손녀딸이 와서 글씨를 써 달라고 하거나 가르쳐 달라고 하면 자신 있게 써주고 가르쳐 줍니다. 덕분에 엄마보다 할아버지가 더 잘 가르쳐준다고 손녀딸이 말해줘서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 이향순 교사님. 학습자께서 학교에 다니시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그 누구보다 직접 보고 경험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관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이) 마음이 서서히 열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사별로 인해 너무 큰 절망을 안고 입학 하셔서 처음에는 굉장히 우울해 하시는 게 옆에서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을 신경 써서 봤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동급생들과 함께 즐기고 공부하며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반장 도전도 하시는 등 적극성도 나타냈고요.
▶︎ 문해학습이 김종원 학습자의 삶에 있어서 갖는 의미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김) 문해학습은 “즐거운 소주 한잔이다”. 소주 한잔을 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세상에 겁나는 게 없어지지요. 노래도 나오고요. 하지만 글을 알기 전에는 노래방을 전혀 못 갔습니다. 글씨를 모르니까 노래를 못 부르잖아요. 지금은 소주 한잔 하면 노래방도 가고 노래도 합니다. 저한테 문해학습은 도저히 겁이 나서 못할 거 같았던 것을 할 수 있게 해준 ’자신감‘ 바로 그것입니다.
(이) 저는 문해학습은 “가랑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간 수업을 해본 경험으로는, 많은 문해학습자들에게 폭포나 소나기처럼 한꺼번에 많은 내용을 알려드리면 오히려 힘들어 하시는 걸 보았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렇게 학습자에게 스며드는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함께 문해학습을 하시는 학교 동기들, 또한 아직 문해학습의 길에 들어오지 않는 성인 비문해자들에게 ‘용기내라’는 뜻에서 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김) 글을 모르고 산 세월에 너무 길었습니다. 집사람이 먼저 떠나지 않았다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배우기 위해 온 학교는 너무 좋았습니다. 같은 입장이라 그런지 낯설거나 차갑게 대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제 글을 알게 돼서 평생 꿈이었던 자전거 여행을 혼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도의 글자도 못 읽고, 거리의 간판도 못 읽어서 꿈으로만 생각했던 일을 이제는 할 수 있습니다. 글을 모르신다면 저처럼 용기를 내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용기를 내서 공부를 하면 떳떳하게 읽을 수 있고 자신감도 커집니다.
(이) 영등포 늘푸름학교는 언제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오셔서 함께 공부하시며 자신감도 찾으시고 보다 편하고 즐거운 삶을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대 사회에서 글을 모른다는 것은 한치 앞이 안 보이는 길을 지팡이조차 없이 걸어가는 것과 같을 수 있다. 김종원 당선자는 말했다. 글을 모를 때는 마음대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조차 없었다고. 문해교육의 혜택으로 불안함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세상에서 모두 함께 살 수 있기를 꿈꿔본다.<끝>

“영등포구청 직영 – 늘푸름학교 문해교육 현장”
안녕하세요 저는 영등포 늘푸름학교 교무부장 이미애입니다. 저희 학교는 영등포구청에서 직영하는 학교입니다. 교장선생님은 영등포구청장님(現 채현일구청장)이시고요. 현재 19분의 선생님과 약 300여명의 학습자가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곳입니다.
저희 학교에는 학력인정과정, 초등과정, 중등과정 등 각각 3단계씩 6단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졸업자나 중등과정 졸업자로서 다시 공부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은빛생각교실’도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중학교 1학년에 입학을 하면 평생 꿈에서 그리셨던 교복을 입고 1박2일 수학여행을 가는 전통적인 행사가 있습니다.
물론 학교 나오시는 것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글을 몰라 답답해 하신 분, 학력 인정을 받고 싶으신 분, 다시 한 번 재교육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학교로 나오십시오. 저희들이 나오시는 학습자들의 손을 잘 잡아드리겠습니다. 당신들의 꿈이 펼쳐질 수 있도록 저희들이 힘껏 힘을 합쳐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꼭 학교로 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