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식지 덕분에 사진도 나와 동네 사람들이 저한테 출세했다고 하고, 그 덕분에 웃을 일이 없는 노인네가 웃고 할 수 있는 기회….
– 지역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지역의 소식을 전해주는 ‘진짜’ 기자가 되고 싶어….
– ‘한마음 글마실’은 제 꿈을 찾게 해주었습니다. 저에게는 ‘무지개다리’….
이 자리에는 ‘한마음 글마실’ 소식지 1기 기자단 송옥씨 어머님(이하 ‘송’), 윤석을 어머님(이하 ‘윤’), 2기 기자단 소속 구자홍 아버님(이하 ‘구’)과 이길자 어머님(이하 ‘이’), 그리고 한글대학 교사이며 기자인 신광협(이하 ‘신’) 교사님과 홍미경(이하 ‘홍’) 교사가 참석하였다. 이분들과 소식지 발간과 그 이후의 삶의 변화 등에 관해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 인터뷰는 코로나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여 이루어졌다.

(윤) 한글대학의 이야기를 담은 큰 글자 소식지입니다. 학습자들이 대부분 작은 글씨의 책은 읽기 어려운 나이입니다. ‘한마음 글마실’은 우리한테 딱 맞는 소식지입니다. 책 볼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소식지 덕분에 사진도 나와 동네 사람들이 저한테 출세했다고 하고, 또한 덕분에 웃을 일이 없는 노인네가 웃고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송) ‘한마음 글마실’은 마을에 있는 학습자들이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창구입니다. 소식지를 통해 다른 마을의 학습자 이야기도 알 수 있고 마을 소식도 알 수 있습니다.(구) 한글대학 소속 학습자들이 재능을 보여주는 발표지 역할도 합니다. 한글대학에는 시와 그림을 잘하고, 재능이 있는 학습자가 정말 많습니다. ‘내 이름 쓸 수 이따’라는 시화집도 출간한 바 있습니다.(이) 글을 쓰고 읽는 것을 넘어서 글을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는 교재이기도 합니다.(신) ‘한마음 글마실’의 출발은 마을에서 공부하는 것을 넘어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좀 드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을 하나로 엮어드리면 어떨까, 그리고 우리가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지역사회에서 좀 알게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한마음 글마실’ 소식지는 주민참여형 큰 글씨 소식지로 한글대학 소식 뿐 아니라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글대학에 참여하는 강사와 학습자가 기자가 되어 직접 취재하고, 사진도 찍고, 기사도 만듭니다. 소식지를 통해 학습자료와 지역사회 소통에 활용하고자 지금은 지역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코너도 만들었습니다. 주민자치회와도 연계하여 서로의 소식을 교차로 담고 있습니다.(홍) ‘한마음 글마실’은 3천 5백부를 발행하지만, 기사 내용을 교차해서 발행했더니 1만 부를 발행하는 홍보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기자단이 좀 더 체계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한글365’라는 단체도 만들었습니다. 올해부터는 논산시가 아닌 ‘한글365’가 주도적으로 소식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 ‘한마음 글마실’ 제작과정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르신들과 교사분의 역할은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신) ‘한마음 글마실’은 코너마다 담당하는 기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한글대학, 함께 하는 한글대학, 성장하는 한글대학 등 코너마다 맡은 기자들이 이야기를 정해서 3~4번의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취재, 기사 작성, 사진 촬영 등을 해서 편집위원에게 넘기면 가편집해서 최종회의를 통해 결정합니다. 특히, 학습자 기자단이 맡은 코너는 ‘함께 하는 한글대학 기관탐방’입니다. 이 코너는 전적으로 학습자 기자들이 진행합니다.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도 정하시고, 직접 인터뷰도 진행하시고, 사진도 촬영하십니다.
▶︎ ‘한마음 글마실’ 창간 이후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홍) 한글대학은 2016년에 280여 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3,200명의 학습자가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큰 학습공동체이지만 서로의 마을에서 학습하다 보니 소식을 접할 기회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한마음 글마실’이 창간되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도 같이 참여하면서 지역 교육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 어르신들께서 ‘한마음 글마실’ 기자단에 지원해서 활동하게 된 동기 또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송) 저는 마을에서 노인회장도 맡고 있고, 봉사활동도 많이 다닙니다.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이 생활의 활력소가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서, 기자를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원했습니다.
(구) 젊었을 때는 마을 이장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 모든 일에서 뒷전에 밀려난다는 느낌이 들어 좀 우울했습니다. 그래서 기자단을 모집한다고 했을 때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라는 것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지원했고, 기자 활동을 하면서 정말 행복합니다.
(이) 한글 공부를 하면서 선생님을 만나서 이렇게 기자단에 오게 됐습니다.
(윤) 평소에도 뉴스를 꼭 챙겨봅니다. 지역사회의 일에 관심이 많은데 기자단을 하면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한마음 글마실’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특히 어떤 면이 좋으셨습니까? 기자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나 생활적인 면에서 달라진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송) 나는 젊어서부터 나가서 봉사하는 것을 무척 즐겼습니다. 집에서 일하라고 하고, 어디서 나와서 일하라고 하면 그렇게 행복하게 일을 했다고 합니다. 시부모님도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습니다. 젊었을 때 일도 많이 하고, 시부모 모시느라 고생했다고 내버려 두어서 봉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저는 이렇게 사람이 모이는 게 엄청나게 즐겁습니다. 인터뷰하러 다니면서 다른 마을 일들을 알아가는 것도 좋고, 우리 동네도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자단 활동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구) 저는 기자 활동을 하면서 달라진 게 있습니다. 첫째, 저의 성격이 고쳐졌습니다. 둘째, 여기저기서 저를 찾아주는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찾아가서 기사를 취재하면서 배우게 됩니다. 소통하게 됩니다. 한번은 방송 촬영을 하러 갔다가 퀴즈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여 답을 맞혀 10만 원의 상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셋째, 기자라고 해서 사람들이 저를 우러러보는 점이 좋습니다.
(이) 제가 다른 지역 면장님을 만나서 기자 명찰을 달고 인터뷰하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또한 기자 활동을 하면서 제가 사는 면사무소에 가서 기자 명찰을 달고 면장님도 만나서 인터뷰도 했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뿌듯합니다. 심지어, 우리 친정 언니가 전화해서 “동생이 출세했네!”라고 칭찬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도 안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다 그렇게 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책도 조금씩 읽고 쓰는 것도 좋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많이 배웠고, 이렇게 그림을 많이 그려봤는데, 애들이 “엄마, 재능이 있네!”라고 할 때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살아가는 지금의 생활이 어쩌면 활기차고 진짜 재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 2017년에 백일장이 열렸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는지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한글대학에서 글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런 상을 언제 받아보겠습니까? 평생 시집와서 살림만 하는 ‘솥뚜껑 운전사’였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상을 받아보겠습니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습니다. 같이 대화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여러 시사 프로그램을 꼭 챙겨보고 있습니다.
▶︎ 교사의 시각에서, 어르신들의 ‘한마음 글마실’ 기자단 활동 참여 이후 달라진 측면에 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어르신들의 기자 활동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신) ‘한마음 글마실’ 학습자 기자단으로 활동하시면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많이 회복하신 것 같습니다. 학습자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단 활동은 물론이고 유튜버도 되시고 방송촬영, MC는 물론 이렇게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도 척척해 내실 수 있는 자신감을 얻으셨습니다. 학습자들은 취재 활동을 하시면서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홍) 저는 어르신들의 정형화된 일상에 돌이 하나 던져져 물결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파장에 어르신들의 삶이 아주 소소하지만 변화해 나갔습니다. ‘한마음 글마실’을 만드는 것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한참 동안 잊어버렸던 어르신들의 자존감 같은 것을 가지실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한마음 글마실’ 기자 어르신들이 “좋아해요!”라고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어르신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좋으신 걸 수도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당신들의 질문에 답해주려고 자꾸 귀 기울여 들어주고 하는 것이 무척 좋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어르신들은 그동안 “여태까지 누구 엄마, 집에서 살림하는 집사람, 또는 그냥 누구 아버지”로 불리어왔으나 기자 활동을 하시면서 “내가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참어른”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마음 글마실’이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어르신들께서 제작하신 소식지에 대한 친구들이나 지역 주민들의 반응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송) 기자로 활동하면서 이름이 나가고 사진도 나가고 하니까 아는 사람들의 전화도 많이 받습니다. “자네, 출세했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KBS ‘6시 내 고향’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우리 집에서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윤) 진짜 전화를 많이 받습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서도 전화가 옵니다. 또한 애들이 “우리 엄마 짱!”이라고 합니다. 가끔은 마을 사람들이 질투가 어린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경 말씀에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라는 구절이 기억나서 한발 물러서서 자랑스럽게 ‘한마음 글마실’ 책을 주면서 한글대학에 나오라고 이야기합니다.
(구) 사람들이 “당신이 기자세요?” 하고 물어봅니다. 시골에서 그냥 농사나 짓고 하던 사람이 시청에 가서 한글대학의 ‘한마음 글마실’ 기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한글대학은 알지만 ‘한마음 글마실’ 기자들을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취재한다!”라고 합니다. “나, 취재하러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 죽겠다! 그런 일을 다 나가고, 출세했네!”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 동네에서 경사가 났다!”라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한테서도 전화가 많이 옵니다.
(신) 두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글대학은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배움터입니다. 단순히 한글만 집중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 그림, 음악 등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잘 배우고, 잘하는 것을 발견해 나가는 곳이라서 ‘한마음 글마실’을 보신 분들은 한글대학이 지역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더 많은 곳에 홍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일단 출간하면 교재로 사용하고 지역에도 배부하지만, 다른 지역에 사는 고향 분들에게도 보내서 논산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윤) ‘한마음 글마실’ 기자 선배로서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을 하든지 즐겁게 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일이든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취재 활동, 인터뷰도 정말 즐겁습니다.(송) 적극적으로 기자 활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일상생활도 더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구) 아무래도 1기 기자단으로 활동하셔서 경험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런 취재 등 현장 경험을 후배들에게 많이 나누어 주셨으면 합니다.(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선배님이 보시기에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많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한글대학 교사이자 소식지 기자의 입장에서 어르신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신) 어르신들께서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 오셨고, 현재도 잘하고 계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지금부터 본인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기억하시면서 ‘나부터 행복해지자!’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같이 공부하고 웃으셨으면 합니다.(홍) 저도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한글대학은 어르신들을 위해 더 많은 기회를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셔서 좀 더 즐거운 노년을 위해 한글대학에서 계속 공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한마음 글마실’ 기자단 활동을 통해 얻으신 자신감과 자존감을 토대로 개인적으로나 지역에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까?
(윤) 지역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지역의 소식을 전해주는 ‘진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송) 한글대학에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더 많이 봉사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구) 새로운 일에 많이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이) 한글대학 덕분에 기자도 되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1기 선배님들처럼 기자 활동을 잘하고 싶습니다.
▶︎ 이제 어르신들과 교사분들에게 이렇듯 소중한 ‘한마음 글마실’을 한두 단어로 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
(윤) ‘한마음 글마실’은 나에게 ‘스타(별)’입니다.
(송) ‘한마음 글마실’은 나에게 웃을 일을 많이 만들어주었습니다. ‘한마음 글마실’은 ‘웃음보따리’입니다.
(구) ‘한마음 글마실’ 덕분에 자존감을 많이 회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의 등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한마음 글마실’은 제 꿈을 찾게 해주었습니다. 저에게는 ‘무지개다리’입니다.
(신) ‘한마음 글마실’은 한글대학과 지역을 연결해주는 ‘이음줄’입니다.
(홍) 한글대학이 가진 무한한 능력에 비해 ‘한마음 글마실’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의미에서 ‘첫걸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송) 저는 봉사하는 마음이 무척 즐겁습니다. 모든 분이 나와 함께 봉사했으면 합니다.(구) 저는 한글대학은 절대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사들이나 우리 기자들이 활동을 많이 해서 북적북적했으면 좋겠고, 또한 꾸준히 소통했으면 합니다.
(이) 저는 한글대학이 끊어지지 않고 꾸준히 지속되었으면 합니다. ‘한마음 글마실’ 기자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윤) ‘한마음 글마실’ 기자로 뽑아주셨으니 계속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한글대학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