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연구위원
병원에 여성 환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왔다. 의사가 무슨 일로 왔는지 묻자 환자는 “아무래도 전립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왔다”고 했다. 이 환자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이 환자는 전립선 질환이 있을까? 이 이야기는 필자가 학생일 때 수업에서 들은 것으로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모르겠으나 헬스 리터러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좋은 사례이다. 여성 환자의 진짜 문제는 전립선 질환이 아니다. 전립선은 남성의 생식 기관 중 하나로 여성에게 존재하지 않으므로(존재한다면 그것도 문제일 것이다), 이 환자의 문제는 전립선이 아니다. 이 환자의 문제는 낮은 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cy)이다.
건강문해력, 건강정보이해력 등 다양하게 번역되는 헬스 리터러시는 건강정보에 접근하여 정보를 얻고, 정보를 이해하고, 적합한 정보인지 판단하고, 정보를 활용하여 실제 생활에 적용하여 의료, 질병 예방, 건강증진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을 수행하는 지식, 동기, 능력이다. 즉, 헬스 리터러시는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필수적인 역량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헬스 리터러시를 건강증진을 위한 주요 요소이자 전략으로 규정한다.
과거에는 건강 관련 정보의 접근성이 낮았다. 대부분의 건강정보는 의료인을 통해 얻었고 개인이 건강 및 의료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찾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건강정보의 홍수시대이다. 다양한 건강정보를 의료인뿐만 아니라 언론매체,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앞서 전립선에 대해 걱정하던 여성 환자는 언론매체나 인터넷에서 전립선 질환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낮은 헬스 리터러시로 인해 정보가 정확한지, 본인에게 맞는 정보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병원을 찾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건강정보 제공이 건강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건강을 위해 정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헬스 리터러시가 낮은 사람들은 건강정보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잘 모르고 건강정보를 믿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정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기도 하며 실제 건강관리를 위해 활용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활용하게 된다. 국내외 선행연구는 헬스 리터러시가 낮은 사람들이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을 위한 신체활동, 건강한 식생활 실천, 금연, 절주, 예방접종 등의 건강행동 수행이 헬스 리터러시가 높은 사람들보다 적다고 보고했다. 또한 헬스 리터러시가 낮은 만성질환자는 질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질환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로 인해 헬스 리터러시가 낮은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에 비해 건강 수준이 낮고 질병 이환율이 높다. 헬스 리터러시가 낮은 사람들은 복잡한 보건의료 시스템에서 본인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찾는 것을 어려워하며, 의료진과의 소통에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아, 1차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정기적인 관리를 하는 대신 응급실을 방문하거나 입원과 재입원을 반복하기도 하며, 의료비를 과다하게 지출하기도 한다. 이렇듯 헬스 리터러시는 개인의 건강관리와 의료서비스 이용, 의료비 지출에 영향을 미치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전반의 건강상태 및 국가 보건의료재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내에서 이루어진 헬스 리터러시 관련 연구는 대상자의 약 20~60%가 낮은 헬스 리터러시 수준이라고 보고했다. 또한 저소득층,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 농어촌 거주자의 헬스 리터러시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 우리나라 국민, 특히 취약계층의 헬스 리터러시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취약계층의 낮은 헬스 리터러시는 이들의 건강관리에 영향을 미쳐 건강형평성이 악화될 수 있다. 외국 주요 국가는 헬스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헬스 리터러시 증진을 인구집단의 건강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보건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략에 헬스 리터러시 증진을 위한 교육을 포함한다.
헬스 리터러시 증진은 개인의 건강 및 국가 보건을 위해 중요하다. 헬스 리터러시 향상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일회성 교육으로, 의료 환경 개선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개인, 지역사회, 교육계, 학계, 보건의료계, 정부 등 다분야 협력체계를 통해 헬스 리터러시 역량을 개발하고 강화할 수 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환경적, 정책적 노력이 함께 이루어질 때 헬스 리터러시 증진이 가능하지만, 이 글에서는 개인 수준의 헬스 리터러시 향상을 위한 교육계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교육계, 특히 평생교육은 전 생애주기에 걸친 헬스 리터러시 역량 강화를 위해 중요하다. 헬스 리터러시 증진을 위한 교육은 단순히 건강 관련 내용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정보를 찾는 방법, 정보를 읽고 이해하기 위한 문해력, 관련 수치를 계산하고 이해하기 위한 수리 능력, 건강정보와 나의 건강에 대해 가족, 의료진 등과 논의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 등 다양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학령기 이후 성인이나 노인의 헬스 리터러시 증진을 위해 평생교육의 일부로 헬스 리터러시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성인문해교육은 읽고 쓰는 기초문해뿐만 아니라 헬스 리터러시를 포함한 생활문해에 대한 교육을 포함하고 있다. 교육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9년 개발한 건강문해 교과서는 학습자가 일상생활에서의 건강관리와 식의약품 안전에 대해 이해하고, 실생활에 적용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건강문해(헬스 리터러시) 교육은 성인문해교육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며, 평생교육에서의 헬스 리터러시 교육의 대상을 저학력·비문해 성인뿐만 아니라 노인, 건강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 등 헬스 리터러시 취약계층을 포함하도록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변화하는 건강관리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헬스 리터러시 교육(건강문해 교과서 등)의 내용과 구성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언론매체와 온라인을 통한 건강정보의 제공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점을 반영하여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건강관리는 평생의 노력이 필요하다. 평생교육으로써 헬스 리터러시의 증진을 위한 교육은 개인의 건강관리 노력과 국민의 건강한 삶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질병의 사전 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한 중장기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은 헬스 리터러시 제고를 중점과제로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헬스 리터러시 증진을 위한 교육자료의 개발과 교육 제공이 활발히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건강증진 정책 및 사업과 평생교육이 연계하여 전 국민의 평생 건강관리를 위한 시너지 효과를 내기를 기대한다.<끝>